열린 경영이 만든 특1등급 와인의 힘

샤토 무통 로칠드 오너 필리핀 드 로칠드 인터뷰
똑같은 품종 심어도 이곳 토양과 1㎞ 떨어진 토양서 전혀 다른 와인이 만들어져 기술과 노하우를 공유하면서 얼마든지 윈-윈전략 가능

  • 샤토 무통 로칠드 제공

프랑스 총리 관저 마티뇽이 있는 파리 시내 7구(파리는 1~20구로 나뉜다). 대로에서 생 시몽이라는 작은 거리로 들어서면 골목이 보인다. 골목 끝, 육중한 철문을 밀고 들어섰다. 아파트가 대부분인 파리 시내에서 보기 드문 단독 주택이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프랑스 와인업계의 여걸, 보르도 와인 명가(名家) 샤토 무통 로칠드의 오너인 필리핀 드 로칠드(Philippine de Rothschild·72) 여사를 파리 자택에서 단독 인터뷰했다.

지 난 14일 오후, 비가 주룩주룩 내렸다. 초인종을 누르니 단정한 원피스 차림에 앞치마를 두른 가사관리인이 나타났다. 현관 옆 작은 방에 겉옷과 우산을 놓아두고 그녀의 안내를 받아 고풍스러운 2층 거실로 올라갔다. 150년 전의 프랑스로 걸어 들어가는 것 같았다.

150여년 전, 프랑스 최대의 와인 산지 보르도에는 특별한 일이 있었다. 1855년 파리만국박람회를 위해 나폴레옹 3세의 지시로, 보르도의 메독 및 그라브 지방에 있는 61개 샤토에 특1등급부터 특5등급까지 등급이 매겨졌다. 이 등급은 150년 넘게 변하지 않았다. 딱 한 번의 예외가 있었다. 그 주인공이 샤토 무통 로칠드다.

1855년 특1등급 와인은 지금처럼 5개가 아니라 4개였다. 당시 특2등급이던 샤토 무통 로칠드는 118년 만인 1973년 특1등급으로 승격했다. 보르도 와인 역사상 전무후무한 예외다.

전통의 두꺼운 벽을 뚫고 1등의 자리로 박차오른 비결…. 그건 프랑스 와인산업을 바꾼, 혁신적이고 미래 지향적인 경영 마인드 덕에 가능했다.

샤 토 무통 로칠드의 역사는 유럽의 금융 재벌 로스차일드 가문의 후손 나다니엘 드 로칠드 남작이 1853년 보르도에 포도밭을 사면서 시작됐다. 오늘의 명성을 일군 일등 공신은 나다니엘 남작의 증손자 필립 드 로칠드(1902~1988)였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외동딸 필리핀 드 로칠드 남작이 회사를 더 성장시켰다. 주인이 여러번 바뀐 보르도의 많은 샤토들과 달리, 성공적인 가족 경영 체제를 이어간다.

벽난로가 놓인 우아한 거실에서 로칠드 여사를 기다렸다. 거실은 작은 박물관 같았다. 탁자 위에 코끼리, 나비 같은 크고 작은 은제품 동물 인형이 빼곡히 놓여있었다. 벽난로 위도, 거실 선반도, 카펫 깔린 바닥도 전 세계에서 수집한 골동품들로 가득했다. 각국 문화에 호기심 많은 로칠드 여사의 단면을 엿볼 수 있었다.

조금 있으니 백발에, 부리부리한 눈매의 로칠드 여사가 나타났다. 작은 키의 여성이었지만, 한 번 들으면 쉽게 잊혀지지 않는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좌중을 압도하는 카리스마를 뿜어냈다. 그녀는 연극배우 출신이다.

1935년생인 로칠드 여사는 와인을 처음 맛본 게 열 살인가 열 한 살 때라고 기억했다. 샤토 무통 로칠드에서 오크통 와인들이 익어가는 냄새를 맡으며 자랐다. 열 살 되던 해, 어머니는 나치 독일군에 잡혀가 강제수용소에서 숨졌다.

스 무살 나이에 샤토를 물려받아 평생을 와인에 바친 아버지와 달리, 남작의 외동딸은 젊은 시절 연극배우로서 자신의 삶을 살았다. 중년에 접어든 1980년대, 아버지의 건강이 악화되자 가업으로 되돌아왔다. 필립 남작이 사망한 1988년, 53세의 나이로 경영권을 물려받았다.

연극배우로 출발해 경영자로 성공한 비결을 묻자 내게는 아버지가 곧 구루(guru·정신적 지도자)였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아버지는 언제나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와인은 예술이다. 예술가가 작품 다루듯 와인을 다루셨지요.


와 인은 예술…. 지금은 진부한 표현이 됐지만, 남들이 눈뜨지 못한 때 일찍이 이 철학을 경영에 접목해 성공을 일군 사람이 바로 필립 드 로칠드 남작이었다. 필립 남작은 1922년 스무살에 샤토를 물려받았다. 혁신적인 아이디어와 진취적인 경영 마인드로 똘똘 뭉친 무서운 20대 CEO(최고경영자)였다. 샤토에서는 와인 생산만 하고, 중간거래상들이 와인을 병에 담아 유통시키던 당시의 관행에 맞서 우리가 만든 와인은 우리가 직접 병에 담겠다고 선언했다. 1924년 샤토 병입을 처음 시작했다. 생산자 책임제를 도입, 품질에 대한 신뢰를 높인 셈이다. 다른 샤토들이 줄줄이 따라왔다.

와인을 문화상품으로 끌어올린 주역도 필립 남작이었다. 손바닥만한 와인병 라벨에 예술을 담았다. 피카소, 달리, 세자르, 샤갈, 앤디 워홀 같은 세계적 화가들에게 해마다 라벨 디자인을 맡겼다.

와인의 국제화에도 선구적 역할을 했다. 프랑스의 와인 생산 기술을 미국에 접목, 1979년 로버트 몬다비와 합작으로 고급 와인 오푸스 원(Opus One)을 개발했다.

그 아버지에 그 딸이다. 로칠드 여사는 일흔 넘은 나이에도 왕성하게 일한다. 오늘날 회사를 2배로 성장시킨 원동력이다. 필립 남작이 사망하던 1988년 당시 판매량은 1300만병, 로칠드 여사가 경영을 맡은 지금의 판매량은 2600만병(2005년 기준). 로칠드 여사는 성공의 90%는 얼마나 적극적으로 일하느냐에 달려있고, 재능은 10% 정도라고 힘주어 말했다.

아버지는 예술가들의 그림을 라벨에 담았고, 딸은 예술같은 라벨로 전 세계 순회 전시회를 시작했다. 2004년 라벨은 영·불 화친조약 100주년을 기념해 영국 찰스 왕세자의 그림을 담았다. 이를 기념하는 전시회를 지난 2월 뉴욕에서 열었다. 최고급 와인의 이미지를 이어가는 명품 마케팅, 문화 마케팅 실력이 발군이다.

개방적이고 국제적인 마인드를 갖춘 점도 아버지와 닮았다. 아버지는 프랑스-미국 합작의 고급 와인 오푸스 원을 만들었고, 딸은 프랑스-칠레 합작의 고급 와인 알마비바를 만들었다.

신세계 와인들이 빠른 속도로 성장해 프랑스 와인을 위협하는데, 무슨 배짱으로 로칠드 부녀는 노하우를 여기저기 해외로 전수할까?

와인은 다른 상품들과 달리, 살아있는 존재 같아요. 똑같은 품종을 심어도 이곳 토양과 1㎞ 떨어진 토양에서는 전혀 다른 와인이 만들어진답니다. 기술과 노하우를 공유하면서 얼마든지 윈-윈(win-win) 전략이 가능해요.

로칠드 여사는 프랑스 와인에 기여한 공로로 국가 최고 훈장 레지옹 도뇌르를 받았다.

가족 기업이지만 연간 매출이 1억6500만유로(2005년 기준, 약 2000억원)에 달한다. 프랑스 전체로 5위, 보르도에서 매출 1위의 와인 기업이다.

샤 토 와인과 브랜드 와인이라는 이원 체제를 확고하게 구축한 것이 성공 요인이다. 특1등급 샤토 무통 로칠드는 전통적 방식으로 소량 생산하는 명품 샤토 와인이고, 또다른 와인 무통 카데(Mouton Cadet)는 첨단 연구소와 자동화 시설을 갖추고 대량 생산하는 브랜드 와인의 대표 상품이다.

이 브랜드 와인을 개척한 역사도 70년이 넘는다. 아버지 필립 남작은 1930년 작황이 좋지 않아 최고급 샤토 와인을 생산하기 힘들게 되자 이 포도로 무통 카데라는 이름의 와인을 만들어 저렴한 값에 내놨다. 예상 외로 반응이 좋자, 합리적인 가격에 괜찮은 품질을 유지하는 브랜드 와인으로 정착시켰다. 지금은 생산량의 80%가 전 세계 150개국으로 수출되는 보르도의 효자 상품이 됐다.

로칠드 여사는 연극배우 시절 결혼해 2남1녀를 두고 첫 남편과 이혼했다. 오랫동안 사귀던 남자친구와 지난해 재혼했다. 두 아들은 아직 경영에 본격 뛰어들지는 않았다.

와인은 로칠드 여사의 일이요, 삶이다. 내가 만드는 와인뿐 아니라 프랑스 전역의 와인, 이탈리아, 스페인, 미국, 호주, 칠레 와인 등을 다양하게 마신다고 했다.

그 중에서 제일 좋아하는 와인 딱 1병만 들고 무인도로 간다면 어떤 와인을 선택하시겠어요?

우문(愚問)에, 현답(賢答)이 돌아왔다.

맙소사, 딱 1병이라니. 그런 슬픈 일이….

와인은 종류도 수만가지, 맛도 제각각이다. 그런 속에서 내 것만 최고라는 폐쇄적 태도를 고집했더라면 오늘날 샤토 무통 로칠드의 성공 스토리도 없었을 것이다.


  • 좌측부터 샤토 무통 로칠드, 샤토 라피트 로칠드, 샤토 라투르, 샤토 마고, 샤토 오 브리옹.

성공하는 사람들의 와인

가장 심오하고 가장 귀족적이고 가장 지적인 와인
생산량 90만병 불과, 맛 음미조차 어려워…
기념일 최고 선물

샤토 라피트 로칠드, 샤토 라투르, 샤토 무통 로칠드, 샤토 마고, 샤토 오 브리옹. 세계 와인 1번지인 보르도(Bordeaux)에서도 특 1등급으로 분류되는 5대 샤토다.

가 장 심오하고 가장 귀족적이며 가장 지적인 와인이라는 데 이의를 달 사람은 별로 없다. 전 세계 와인 애호가와 수집가의 관심이 집중되는 5대 샤토의 연간 총 생산량은 다 합하여 90만병 정도. 포도밭의 면적이 가장 넓은 라피트와 무통이 연간 각각 20만병 이상을 생산하고, 나머지 3개 샤토의 생산량은 12만~14만 병 정도에 그친다.

5대 샤토의 맛을 음미하고 평가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구하기도 어렵거니와 가격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고급 와인을 얼마나 마셔 봤느냐가 와인 전문가 평가의 중요한 기준이 될 만큼 좋은 와인을 마셔보는 것은 흔치 않은 기회다.

그러나 와인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5대 샤토의 이름과 특징은 꼭 알아둘 필요가 있다. 5대 샤토 와인은 전 세계 성공한 사람들이 마시는 70만 병 중의 1병꼴이기 때문에 선물이나 접대를 받을 때 이 와인이 나온다면 그 가치를 알아줘야 예의다.

5대 샤토의 공통점은 카베르네 소비뇽 포도 품종을 기본으로 한다는 것이다. 빈티지(생산연도)에 따라 포도 품종의 블렌딩 비율이 달라지기 때문에 맛도 다르며, 가격 또한 빈티지가 좋은 해의 와인이 평범한 해보다 2~3배씩 비싸다.

오 래되면 좋은 와인이란 바로 이런 와인을 두고 하는 말이며, 생일이나 결혼 등 기념 와인으로는 최고급 선택이다. 포도밭의 면적이 한정돼 있기 때문에 세계적으로 수요가 증가해도 생산량을 늘릴 수 없다. 그래서 투자 가치도 가장 높다.

1등급 샤토 중 라피트, 라투르, 무통은 보르도 지방 지롱드 강 왼쪽 강변마을인 포이약(Pauillac)에 위치한 샤토들이다. 해마다 세계적인 화가의 그림으로 라벨을 만드는 샤토 무통 로칠드는 와인과 예술의 조화로 유명하다.

무 통과 이웃하고 있는 라피트는 완벽한 밸런스를 자랑하며, 라투르는 어떤 빈티지에도 최고의 강건함이 특징이다. 헤밍웨이가 사랑한 샤토 마고는 마고 여왕을 연상시키는 우아한 와인으로 와인의 여왕, 여왕의 와인이라 불린다. 5개 샤토 중 지역적으로 완전히 떨어진 그라브 지역에서 생산되는 오 브리옹은 포도 품종 중 메를로의 비중이 가장 커서 제일 부드럽고 화사한 와인으로 표현된다.

자 주 마실 수 없는 와인이기에 최근 빈티지의 와인을 선물 받았다면 최소 10여 년 이상 잘 보관하는 게 좋다. 와인은 병 속에서도 숙성되며 사람처럼 세월의 의미를 느낄 수 있는 유일한 술이기 때문이다. 하물며 그 와인이 5대 샤토 중 하나라면 기다릴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