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블룸버그 (블룸버그통신 회장)

뉴욕시장의 새 도전


블룸버그 시장의 거침없는 성공 질주… 뉴욕 넘어 백악관으로 가나 9·11 테러 이후 실업률 최저·관광객 30% 증가·재정 흑자 반전 평범한 유대인 출신으로 박수 받는 CEO시장까지 승승장구 민주당에서 공화로, 다시 무소속으로 계산된 베팅… 美 대선 와일드 카드로 경쟁력이 정당 이념보다 중요 민주·공화 정치싸움 틈새 겨냥 단신에 이혼남 등 단점 불구 수조원대 재산이 강력한 무기
▲ 지하철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블룸버그 뉴욕시장.

311 콜센터. 마이클 블룸버그 미국 뉴욕시장이 2003년 시민의 불편이나 시정에 대한 문의를 위해 설치한 24시간 민원안내 전화창구다. 이 전화가 개통된 후 지금까지 무려 5000만건의 민원이나 문의가 접수됐다.


미국에서 이런 핫라인은 많은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고 있지만 규모와 전문성에서 뉴욕시와 비교가 되지 않는다. 전화접수 인원만 500여명에 이르며 접수된 내용은 즉각 데이터화한 후 담당부서로 전달돼 처리된다. 모두 179개 언어로 서비스하고 있는 콜 센터는 이제 뉴욕의 명물이 됐다.


블룸버그 시장이 2001년 취임한 이후 뉴욕이 변했다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오고 있다. 실제로 2001년 이후 15만1100개의 일자리가 생기는 등 뉴욕시의 실업률이 9·11 테러 이후 최저 수준으로 줄었다. 관광객도 30% 정도 늘어나는 등 다 죽어가던 관광산업도 9·11 테러 이전 수준으로 회복됐다. 60억달러에 이르던 재정적자는 올해 35억달러 흑자로 돌아섰다. 범죄는 계속 감소 추세다. 연간 2000건씩 발생하던 살인사건은 600여건으로 격감했다.


뉴욕시가 이처럼 바뀐 이유는 무엇일까. 시장으로서 그의 가장 큰 과제는 9·11테러 후 경제적·심리적으로 완전히 공황에 빠진 뉴욕을 되살리는 일이었다. 이를 위해 그가 선택한 수단은 기업의 경영기법이었다. 블룸버그 시장은 뉴욕시를 하나의 거대 기업으로 보았다. 시민 800만명은 소중한 고객이다. 고객을 위해 어떤 서비스를 할 것인가 고민하는 데서 그의 정책이 입안됐다.


그가 내놓은 정책은 모두 시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이었다. 대규모 주택 공급, 걸어서 10분 내 공원 마련, 지하철 확장,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 30% 감축, 강·항구·해안 지역의 90%를 시민휴식처로 공개, 학교 신·개축, 상수도용 터널 건설 등 청사진을 마련했다. 범죄도시라는 악명을 없애기 위해 브롱크스, 브루클린 등 이른바 적색(赤色)지대에 경찰력을 집중배치했다. 쾌적한 도시 환경을 만들기 위해 식당이나 술집에 대해 강력한 금연정책을 시행했다. 음식점이나 술집 경영자는 강력히 반발했으나 시민은 박수를 쳤다. 도시 곳곳에 가로수를 심었다.


올해부터 2012년까지 뉴욕시의 모든 택시는 하이브리드 자동차로 바뀐다. 현재 1만3000대에 이르는 옐로 캡은 뉴욕시의 상징이지만 기름을 많이 먹고 오염물질 배출이 심하다. 블룸버그 시장은 주행거리가 긴 택시 1만3000대를 하이브리드로 바꿀 경우, 개인차 3만2000대를 교체한 것과 같은 효과가 있다고 강조했다.


▲ 총기 규제를 지지하는 시장들 모임에서
블룸버그 뉴욕시장이 연설하고 있다.

그의 정책은 뉴욕 2030 계획(PlaNYC 2030)의 일환이다. 뉴욕시를 2030년까지 인구 증가에 대비하고, 노후된 사회기반시설을 재정비하고, 공해로부터 해방된 21세기형 도시로 탈바꿈시킨다는 것이다. 이 계획을 추진하려면 대규모 자금이 필요한데, 이를 위해 뉴욕시가 가진 자산을 최대한 활용하겠다는 것이 블룸버그 시장의 복안이다.


월스트리트가 있는 뉴욕시는 세계 금융의 중심지이면서 관광도시로도 유명하다. 뉴욕시는 그 동안 관광사업으로 짭짤한 수익을 거두었지만 9·11 테러의 후유증으로 관광객이 급감했다. 블룸버그 시장은 홍보담당 부서를 통합해 비영리법인 NYC&Co를 설립했다. 전 세계 주요 도시 14곳에 홍보 사무실을 냈으며, 서울·도쿄·상하이에도 추가로 열 방침이다.


이런 노력으로 뉴욕을 찾는 관광객은 2002년 3500만명에서 지난해 4400만명으로 늘었고, 2015년에는 5000만명을 유치할 계획이다. 블룸버그 시장은 뉴욕시의 재정적자 해결을 위해 재산세를 18.5%나 인상했다. 세금 인상은 당시 많은 반대에 부딪혔지만 공공서비스 개선은 관광객 증가와 일자리 확대로 이어지면서 최대 성공정책으로 꼽히게 됐다. 경기가 좋아지면서 시민과 상인의 세금을 13억달러 깎아줄 정도로 시 살림이 늘어났다.


블룸버그 시장의 성공요인은 철저한 경영자적 시각의 시정 운영에 있다. 미국 경제주간지 비즈니스위크는 이를 최고경영자(CEO)형 리더십이라고 규정했다.(2007년 6월 14일자) 이 주간지는 블룸버그 시장은 실용주의를 추구하며 공공서비스의 새로운 모델을 창조하고 있는 CEO형 시장이라고 평가했다. 이 잡지는 그의 장점으로 기업인으로서 몸에 익힌 마케팅과 데이터 분석 능력, 위험을 피하지 않는 과감한 결정, 투명행정 등을 꼽았다.


무엇보다 그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정치적으로 타협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표적 사례가 바로 총기 규제이다. 버지니아공대 총기 난사 사건에서 보듯 미국에서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총기 소유에 따른 강력사건이다. 민주당이나 공화당은 총기 소유의 부작용을 잘 알면서도 전미총기협회(NRA)와 총포상의 강력한 로비에 밀려 이를 규제하는 법을 제정하지 않고 있다.


뉴욕시의 강력사건을 줄이려면 총기 규제가 필수적이라고 생각한 블룸버그 시장은 이들과 정치적 거래를 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발벗고 나섰다. 그는 불법총기에 대처하는 시장들이라는 시장연합체를 결성했다. 15명으로 시작된 이 모임은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회원이 225명으로 늘어났다. 그는 또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한 노력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그는 부시 대통령과 공화당 지도부의 눈총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지난 5월 세계 40여개 주요 도시 시장이 참석한 국제 주요 도시 기후 정상회의를 개최하기도 했다.


블룸버그 시장에게는 실패는 없다라는 말이 항상 따라다닌다. 그의 성공신화는 아메리칸 드림의 전형이다. 1942년 폴란드 출신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평범한 어린시절을 보냈지만 회계일과 서무를 하던 부친의 영향을 받아 숫자에 상당히 밝았다. 존스홉킨스대와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을 나와 1966년 투자은행 살로먼브라더스의 증권거래 중개인으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그는 승승장구하면서 파트너의 자리까지 올랐다.

1981년 사내의 라이벌에 밀려 졸지에 해고된 그는 한때 위기를 맞기도 했다. 퇴직금으로 받은 1000만달러를 밑천으로 그는 경제 뉴스와 각종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서비스하는 경제 전문 뉴스 통신사인 블룸버그통신을 만들었다. 창업 당시 주위에서는 모두 이를 말렸다. 200년 전통의 영국 로이터통신이나 월스트리트 저널을 발행하는 미국 다우존스그룹의 다우존스마켓 같은 공룡이 버티고 있는 상황에서 블룸버그통신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블룸버그통신은 현재 전 세계 100여개 지역에 특파원 1200여명을 포함, 모두 8000여명의 직원을 둔 종합미디어그룹으로 성장했다. 그는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선정하는 미국의 400대 갑부 중 34위, 세계 억만장자 중 147위를 차지하면서 미디어와 금융계의 황제가 됐다.

블룸버그가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2000년 존 매케인 상원의원(공화)과 본격적인 친분을 쌓으면서부터다. 매케인 의원은 그에게 뉴욕시장에 도전해볼 것을 권유했다. 평소 공공을 위한 봉사에 관심이 많던 블룸버그는 시장으로서 시민에게 보다 나은 공공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원래 민주당원이던 그는 시장 출마를 위해 당적을 공화당으로 바꿨다. 당시 나는 아웃사이더이기 때문에 민주당 예비선거에서 후보로 선택될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당적 변경 이유를 솔직히 설명했다. 그는 2001년 뉴욕의 108번째 시장으로 당선됐고, 2005년 재선에도 성공했다.

블룸버그 시장은 또 한 번의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지난 6월 19일 공화당을 탈당, 무소속으로 시정을 이끌겠다고 전격 선언하자 미국 언론은 일제히 차기 대선에 출마하기 위한 포석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공화당과 민주당이 너무 우유부단해 국가적인 큰 문제를 다루지 못하고 있으며, 두 당은 사소한 일에 얽매여 함께 일을 할 수 없다고 탈당의 변을 밝혔다. 공화·민주 양당 모두 파당정치에 몰두해 국민의 삶에 급박하고도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문제가 무엇인지, 국민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외면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미국 언론은 그가 차기 대선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부인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행보에 주목하고 있다. 실제로 그의 탈당 선언은 측근들이 지난 2년간 대선에서 무소속 출마 가능성을 검토한 이후 나온 것이라고 뉴욕타임스는 보도했다.(2007년 6월 21일자) 이 신문은 그가 대선 경쟁에 나서면 얼마나 비용이 들어갈지를 알아보기 위해 1992년 대선에 출마했던 텍사스의 억만장자 로스 페로의 선거활동을 면밀히 연구했다고 전했다.

이처럼 은밀한 사전 준비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혼남이고 유대인인 데다 키도 작기 때문에 어떻게 출마하겠느냐고 반문한다. 자신의 약점을 그대로 노출하면서 국민이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타진하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그의 말처럼 미국 역사상 유대인 출신이 대통령이 된 적은 없다. 유대인 인구는 580만여명으로 전체 인구(3억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극히 낮다. 하지만 유대인은 금융계를 비롯해 정·재계 등 요직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이 주지의 사실이다.

블룸버그 시장에게는 유대인이라는 것이 약점이지만 강점도 될 수 있다. 미국은 가족을 중시하는 사회지만 이혼율은 다른 국가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다. 블룸버그 시장은 1993년 조강지처인 수전 브라운과 19년간 유지해온 결혼생활을 끝냈다. 19세기 이후 미국에서 결혼하지 않은 사람이 대통령으로 선출된 적은 없다. 특히 미국 국민은 대통령과 가족의 모습을 보기 원한다. 또 재클린 케네디나 낸시 레이건 같은 퍼스트 레이디에 대한 향수도 있다.


▲ 블룸버그 통신사 건물의 전경

그의 키도 문제가 될 수 있다. 1960대 이후 역대 대통령의 신장은 183㎝가 넘었다. TV시대의 대통령은 키가 크다는 것이 예외 없는 규칙이다. 키가 작으면 토론할 때 상대방을 쳐다볼 수밖에 없어 일단 한 수 접고 들어간다는 이미지를 유권자에게 주기 때문이다. 역대 대통령의 신장을 보면 조지 W 부시 현 대통령과 리처드 닉슨, 존 F 케네디가 183㎝, 로널드 레이건은 185.5㎝, 아버지 부시와 빌 클린턴은 188㎝이고 린든 존슨은 192㎝였다. 유일하게 지미 카터 전 대통령만이 176㎝였다. 블룸버그 시장은 171㎝다.

그 렇다면 블룸버그 시장의 장점은 무엇일까. 뭐니뭐니해도 부자라는 것이다. 블룸버그 시장은 나는 블룸버그다. 블룸버그는 돈이다. 돈은 곧 성공이다라고 1997년 펴낸 자서전에서 자신의 이름을 성공의 동의어로 정의했을 정도로 자신감을 보여왔다. 실제로 그는 두 차례 뉴욕시장 선거에 1억5500만달러를 쏟아부었다. 미국 선거법에 따르면 후보가 정부 보조금을 사용하지 않을 경우, 선거자금 상한선이 적용되지 않는다. 때문에 개인 돈은 얼마든지 쓸 수 있다. 측근들은 블룸버그 시장이 사재 55억달러 중 10억달러를 대선자금으로 쓸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돈만으로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다면 세계 최고 부자인 빌 게이츠는 이미 대통령이 되고도 남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풍부한 선거자금은 TV 등에 광고를 엄청나게 할 수 있는 만큼 유리한 수단이 될 수 있다.

블룸버그 시장이 정작 넘어야 할 벽은 무소속이라는 것이다. 미국 정치판은 지금까지 철저하게 양당제 구도에 따라 움직여왔다. 역대 대선에서 무소속이나 제3당 후보가 당선된 사례는 없다. 특히 미국 대통령은 선거인단이 선출하기 때문에 일반 투표에서 아무리 많이 득표를 해도 각 주에서 선거인단을 확보하지 못하면 패한다. 페로 후보도 1992년 19%의 득표율을 올렸지만 50개 주 중 한 곳에서도 승리하지 못해 선거인단을 1명도 확보하지 못했다.

역대 무소속 후보 중 조지 월러스 후보만이 1968년 대선에서 5개 주에서 승리해 선거인단 46명을 확보했다.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블룸버그 시장은 무소속의 입지가 확대될 기회만 노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성공적인 기업가는 정치 싸움보다 업적이 중요하며, 경쟁력이 정당 이념보다 중요하다는 걸 잘 안다고 말했다. 민주당과 공화당이 첨예하게 이념 논쟁을 벌여 온 워싱턴의 정치판과 거리를 유지하면서 정치에 염증을 느낀 중도파 유권자에게 손짓하는 제스처라고 볼 수 있다.

미국 유권자는 최근 들어 기성 정치권에 대한 불만과 혐오를 노골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최근의 WSJ·NBC 여론조사(2007년 6월 13일자)에 따르면 미국이 올바른 방향으로 가느냐는 질문에 19%만이 그렇다고 응답, 1992년 7월 이후 최저치를 보였다. 이라크 전쟁 등으로 민주당과 공화당의 당파성은 갈수록 강해지고 국론은 분열된 상태다. 블룸버그 시장이 말이 아닌 행동하는 정치의 중요성과 초당파적 리더십을 강조하는 것도 유권자의 마음을 읽고 있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스는 그가 막판까지 판세를 지켜보다가 승리에 대한 확신이 설 때 출마를 결행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케네스 셰릴 헌터대학 정치학 교수는 그는 승산이 없다고 생각되면 출마하지 않지만, 승산이 있으면 출마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블룸버그 시장도 2000년 대선에서 녹색당 후보로 출마, 1%의 득표율을 기록한 랄프 네이더처럼 선거에 훼방꾼이 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골프를 했다면 타이거 우즈를 이기려고 했을 것이라고 지인들이 말하는 것처럼 블룸버그 시장은 목표지향적이다. 때문에 또 한 번의 성공신화를 꿈꾸고 있는 블룸버그 시장은 차기 대선에서 강력한 와일드 카드가 될 수 있다. 메이저리그 월드시리즈에선 와일드 카드로 올라온 팀이 종종 우승하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