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구이룽 (중국, 칭다오 맥주 CEO)



칭다오 맥주의 발전은 중국의 발전 과정과 같다고 할 수 있지요. 우리가 서 있는 이곳은 15년 전 작은 농촌이었지만, 지금은 빌딩 숲을 이루고 있지요.

칭다오 맥주 리구이룽(李桂榮) 회장은 검소한 옷차림과 격식을 따지지 않는 중국의 보통 아저씨다. 칭다오 맥주는 1996년까지도 계획경제하에서 정부의 주문 수량만큼만 생산해 납품하는 국유기업이었다. 당시의 생산량은 30만?에 지나지 않았다. 2006년 칭다오 맥주의 생산량은 454만. 10년 사이에 15배 늘어났다. 지난해 이 회사의 순수익은 6억4000만 위안(770억원). 리 회장은 2006년도에 세금만 31억 위안을 냈다며 껄껄 웃었다. 현재 칭다오 맥주의 브랜드 가치는 224억 위안(2조6880억원). 칭다오 맥주의 오늘이 있기까지 사회주의 경제에서 시장경제로 전환하는 아픔이 있었다. 리 회장이 회사 CEO로 취임한 것은 1996년. 이전까지 그는 시 정부에서 계획경제를 담당하던 간부였다.
계획경제를 하다가 갑자기 시장경제를 하려니,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연했지요. 시장경제의 관념은 없었지만 노력하는 사람을 경쟁시키고 잘하는 사람을 격려하는 방법을 썼어요.
1996 년 말 회사에는 22개 부서에 300명의 직원이 있었다. 리 회장은 직원들을 모아놓고 여러분, 미안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기존의 22개 부서를 없애고 새로 8개 부서를 설립했다. 300명 직원 중 82명만이 새로운 일자리를 얻었다.

칭다오 맥주는 1903년 점령국 독일이 세워 맥주를 생산하다 1914년부터는 일본의 관리하에 들어간 것을 공산화 후 중국이 인수했다. 리 회장은 우리는 독일인에게서는 근면한 정신을 배웠고, 일본인에게서는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고 친환경적인 제조법을 익혔다고 말했다.

칭다오 맥주는 1999~2001년 사이 중국 내 여러 개 맥주회사를 인수합병, 몸집을 불렸다. 또 해외 일류기업과도 적극 손을 잡았다. 선전(深?)의 맥주회사는 일본 아사히 맥주와, 상하이 공장은 덴마크의 칼스버그와 기술을 합작했다. 칭다오 맥주는 맛을 유지하는 데도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 리 회장은 선전과 상하이에서 본사와 똑같은 맛을 내는 데 우리 기술진이 3년 걸렸다고 말했다.

칭다오 맥주는 수출 비중이 4%에 지나지 않는다. 국내 시장이 매년 두 자릿수로 성장하는 바람에 수출할 물량이 부족했기 때문. 하지만 최근 수출 비중을 조금씩 높이고 있다. 현재 칭다오 맥주는 세계 50여개국에 7만~8만t을 수출하고 있다.

한국에도 1000t 가량이 들어온다. 국내의 한국인들 중에는 칭다오 맥주회라는 동호회까지 생겼다. 중국인에 이어 한국인의 입맛도 서서히 잡아가고 있다. 리 회장은 10년 후의 목표에 대해 세계 5대 맥주회사로 키우는 것과 외국 회사들이 진정으로 모방하고 싶은 국제적 회사로 키우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에게서 계획경제의 그림자도 찾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