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패션계 경악시킨 한인 여성

초고속 승진 행진… 29세에 佛 명품 남성복 수석 디자이너에
날 어린 학생으로 보는 사람 많아
모델들도 내게 수석 어딨냐물어 일부러 엄하게 말하는 법 배웠죠

    다들 사건이라고 했어요. 전 당연한 선택이라고 했죠.(웃음) 2007년 프랑스 명품 남성복 브랜드 스말토(Smalto)는 뜻밖의 선택을 했다.

    지난 1월 말 수석 디자이너(Chief Creative Director) 자리에 29살의 한국계 여성 박윤정씨<사진>를 앉힌 것이다. 스말토는 40년 전통의 남성복 브랜드로, 미테랑 전 대통령이 즐겨 입은 것으로 유명하다.

    패션계는 경악했지만, 정작 박윤정은 담담했다.

    지난 6월 30일 파리에 있는 스말토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제가 비록 나이 어린 동양인 여성이지만, 저보다 스말토를 잘 이끌 수 있는 인물은 없다고 자부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작은 얼굴이 고등학생처럼 앳돼 보였다.

    박 씨는 스위스에서 태어났다. 처음부터 디자이너가 될 생각은 없었다. 남자 옷을 걸치고 다니면서 선머슴처럼 꾸미고 다니는 게 재미있었고, 미술과 뜨개질을 유난히 좋아했을 뿐이다. 그러나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박씨는 마치 계시를 받은 것처럼 프랑스 파리의 3년제 의상학교인 에스모드에 입학했다. 늦게 배운 도둑질에 밤새는 줄 몰랐다. 남들보다 뭐든지 빨리 했어요. 재봉이건 디자인이건 흥미진진했거든요.

    졸업 후 박씨는 스말토에 입사지원서를 냈다. 남성복으로 경력을 시작하고 싶었다. 당시 수석 디자이너였던 프랑크 보클레(Franck Boclet)는 그에게 전폭적인 신임을 보냈다. 타고난 미술감각, 이태리어·독일어·프랑스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어학능력을 갖춘 박씨를 오른팔로 삼은 것이다. 입사 3년 만에 부수석 디자이너가 됐고, 7년 만에 수석 디자이너로 임명됐다. 패션계에서도 이례적인 초고속 승진이었다.

    너무 빨리 1인자가 된 것은 아닐까? 박씨는 사람들이 나를 그저 어린 학생으로 볼 때 제일 난감하다며 웃었다. 새로 캐스팅된 모델들이 수석 디자이너실에 찾아와 박씨에게 누가 수석 디자이너냐라고 묻는 건 예삿일이다. 수많은 사람들을 호령하며 일하기 위해 박씨는 짧고 엄하게 말하는 법을 일부러 배워야 했다. 적어도 내가 수석임을 알려야 하니까. 대신 필요할 땐 언제든지 손수 바느질하고 무릎 꿇고 정리하는 모습을 보여줘요.

    지난 1일 스말토가 파리에서 선보인 2008년 봄·여름 남성복 컬렉션은 박씨가 처음부터 끝까지 직접 지휘한 것이다. 총 32벌의 옷을 새로 내놨다. 선이 굵은 남성미가 물씬 풍기던 기존 스말토의 이미지를 박씨는 자연스럽게 바꿔놨다. 직각으로 떨어지던 어깨선은 좀 더 부드러워졌다. 검정색은 자제하고, 베이지색이나 회색, 연한 줄무늬가 들어간 소재를 사용했다. 박씨는 영국 영화배우 주드 로, 우리나라 가수 비가 입었을 때 어울릴 법한 옷이라며 남성미가 느껴지면서도 부드러운 매력을 지닌 남자들을 위해 옷을 만든다고 말했다. 박씨는 스말토를 기존의 고급 남성복 이미지를 벗어나, 글로벌 브랜드로 확장하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