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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와 인생, 경영은 같은


프로골퍼
최경주 키운 피홍배 ()삼정 회장

기업 경영 벙커에 빠질 수도…IMF 월급떼어 최경주 후원

싱글은 노력 없인 없다
골프 싱글은 인생 싱글이다
필드에선마음 다스리기 보약이다
골프장 탓하기 전에 자기 탓부터 하라
남에게 피해 주지 않는 최고 매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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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 23일은 세계적 프로골퍼 최경주 선수에게 경사가 겹친 날이다. 같은 노무현 대통령으로부터 체육훈장인청룡장 받고, ‘최경주 재단 출범했다. 이날 행사장에서 시종일관 선수 옆을 떠나지 않았던 사람이 있다. 최경주재단 이사장으로 위촉된 ㈜삼정 피홍배(70) 회장이다. 그를 만나 선수와의 10 우정과 골프, 기업과 인생 스토리를 들었다.

2004 최경주 선수는 마스터스골프대회 단독 3위로 아시아 선수 최고 기록을 세웠다. 이때 한국 취재진은한국에 들어가면 가장 먼저 누굴 만나겠느냐 물었다. 선수는나의 양아버지인 피홍배 회장이라고 답했다.(최경주 선수는 그를 위해 물심양면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회장을 양아버지라 부르고 있다.)
최 선수의 숨은 후견인이었던 피 회장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게 이때부터다. 그는 당시 얼떨결에 기자들의 취재 요청에 응해야 했다. 하지만 그때 이후 피 회장은 언론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최근 최경주재단이 출범하면서 그의 이름이 다시 회자되기까지 말이다.
그는 평상시 본인을 드러내길 원치 않는 기업인이다. 인터넷 검색에서도 그가 운영하는 회사나 그의 인터뷰 기사를 찾기가 어렵다.
그는 72년 설립한 폐기물 재생 회사인 ㈜삼정 이외에도 골프장 개발업체인 가야개발, 동을 제련하는 시화제련, 케이블 전선을 생산하는 삼정 씨더블유 등 4개 기업을 운영하고 있지만 회사 홈페이지 하나 만들어 놓지 않고 있다.
묵묵히 기업을 일구는 것 외에 회사를 치장하고 알리는 게 필요치 않다는 것이 이유였다. 전체 매출 규모는 연간 4500억∼5000억원으로 덩치가 꽤 큰 중견기업 수준이다.
11월 28일 강남 사무실에서 만난 올해 일흔의 피 회장. 그는 기자를 보자마자 수줍은 미소부터 지었다. 언론과 자주 접하지 않아 낯설다고 말했다. 인터뷰에 응하기까지 그가 얼마나 심사숙고했는지 느껴졌다.
“최 선수를 후원한 건 돈을 벌기 위해서도, 기업을 홍보하기 위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실력 있는 사람을 돕고 싶었을 뿐이죠.”
그와 최 선수의 인연은 외환위기 때인 1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피 회장이 88골프장 운영위원장을 할 때 최 선수가 투어 프로로 발탁돼 온 것이 계기가 됐다.
“최 선수와 같이 운동해 보니 기량도 좋고 재목도 좋아 보이더군요. 노력을 무척 많이 하는 선수였어요. 국내 골프계에 혜성처럼 나타나 5승이나 했는데도 기회를 못 찾고 있는 게 안타까웠죠. 한국의 프로 생활이란 게 참 힘들잖아요. 한국에서 5승 해 봤자 상금 2000만∼3000만원 수준이었거든요. 집 한 채도 못 살 돈이죠. 그래서 외국 대회에 나가보라고 권했죠.”
마음만 있다고 외국에 나갈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우승권이 아니면 외국 나갈 경비를 선수 자신이 감당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는 그런 최 선수를 보는 것이 안타까웠다.

피홍배 회장은…

1937 년 출생해 61년 단국대 행정학과를 졸업한 후 박정희 대통령 집권 시절인 63~72년까지 청와대 총무비서실에서 행정직 공무원으로 일했다. 청와대를 나온 직후인 72년 폐기물 재생 회사인 ㈜삼정을 설립했다. 90년 가야개발, 91년 시화제련, 98년 삼정 씨더블유 등을 차례로 설립하며 회사를 키웠다. 35년간 기업을 경영하며 수차례의 부침도 겪었다. 회사 부도로 인한 자살 시도와 재기, 갑작스럽게 찾아온 중풍에 따른 또 한 번의 좌절, 그리고 재기…. 피 회장의 파란만장한 인생 역정은 한때 라디오 드라마로 제작되기도 했다. 건강을 찾기 위해 본격적으로 시작한 골프는 그의 인생에 윤활유였다. 97년엔 환갑의 나이에 클럽 챔피언을 따내기도 했다. 최경주 선수와는 97년 남성대 골프장에서 처음 만나 10여 년간 인연의 끈을 이어가고 있다.
“한 번 가는 데 경비가 한 200만원 든다고 해요. 그래서 제가 내 월급의 절반이라도 떼어 줄 테니 나가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제 앞에서 눈물을 뚝뚝 흘리더라고요.”
외환위기 시절이라 회사도 어려운 때였다. 그는 기업 하나를 일구는 일만큼 중요한 것이 사람을 키우는 일이라는 것에 확신을 갖고 있었다. 최 선수는 그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피 회장의 후원금을 가지고 나간 99년 일본 기린오픈대회 우승을 시작으로 기량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아시아권에서 자신감을 얻은 최 선수가 일본에서 선수 생활을 하겠다고 했을 때 미국행을 권유한 것도 피 회장이다.
피 회장은 “사람은 큰 물에서 놀아야 한다. 무조건 미국으로 가라”고 최 선수의 등을 떠밀었다.

93년 중풍으로 쓰러졌다 재기
피 회장은 88골프장의 여명현 사장(현 최경주재단 사무총장)과 의기투합해 최 선수의 든든한 후견인이 됐다. 2000년 미국행과 함께 한국인 최초 PGA 선수가 된 최 선수는 2002년 한국인 최초 PGA 투어 우승, 현재 PGA 투어 통산 6승을 기록해 세계 골프계를 놀라게 했다. 동양권 남자는 PGA에서 통할 수 없다는 통설을 보기 좋게 깨버린 것이다.
“최경주 브랜드가 가지고 있는 경제적 가치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을 겁니다. 우리나라에서 몇 개 기업이나 최경주만큼 국위선양을 하겠습니까.”(허허)
골프 라운딩을 할 때는 수많은 위기 상황이 있다. 볼이 벙커 또는 워터 해저드에 빠지거나 갑자기 바람이 불어 전혀 예상치 못한 곳으로 날아가기도 한다. 피 회장도 기업 경영을 하면서 여러 차례 ‘벙커’에 빠지는 위기를 겪었다.
날 개를 못 펴고 있던 최경주 선수를 키우기로 한 것도 본인이 ‘인생 벙커’의 절망을 절실히 체험했기 때문일지 모른다.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청와대 총무비서실에서 10여 년 간 행정직으로 일했다. 72년 청와대를 나와 폐기물 재생 회사인 ㈜삼정을 설립했다. 70년 오일 쇼크로 국제적인 자원 파동이 일어 기업들이 타격을 받는 것을 보고 에너지 분야에 관심을 기울였던 것이다.
“덜컥 회사는 설립했지만 폐기물의 재생기술 개발, 폐기물 수집, 공급처 확보 등 어느 것 하나 쉬운 것이 없었어요. 1차로 변압기에서 생성되는 폐절연유의 재생을 위해 수차례 시행 착오를 거친 뒤 기술 개발에 성공했죠.”
그는 전국에서 폐절연유(변압기에 들어가는 윤활유로 오래돼 못 쓰게 된 것)를 수집해 이를 재생하기 시작했다. 이후 폐동(구리) 전선의 재생 활용, 폐PVC 전선의 재활용, 변압기 정비 수리와 생산까지 사업 영역을 넓혔다.
이 런 사업을 일으키기까지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73년 한국전력은 폐절연유 재생 업체 선정을 위한 입찰을 했다. 변압기 등에서 나온 성능이 떨어진 오래된 기름을 재활용하기 위해 업체들에 재활용 비용을 주고 연간 계약을 하기로 돼 있었는데 덤핑 경쟁이 도를 넘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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