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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삼구 회장

2011.02.28 00:46

관리자 조회 수:1073

재계 미다스 그는 아직 배가 고프다

●“대우건설을 인수, 금호아시아나그룹을 재계 11위에서 7위로 단숨에 끌어올린 박삼구 회장. 회장은 나아가 대한통운을 인수, 재계 1위에 도전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갖고 있다. 그의 꿈은 과연 실현될 있을까.”

금호아시아나그룹이 지난해 6월에 대우건설을 성공적으로 합병한 이후 눈부신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단숨에 재계 순위 11위에서 경쟁사인 한진그룹의 뒤를 이어 7위로 수직 상승한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박삼구 회장이 지난해 2월에 창사 60주년을 맞아 대우건설과 대한통운 인수 의사를 동시에 밝힐 때만 해도 회의적인 시각이 많았다. 자산 12 원의 금호아시아나그룹이 64000 원이라는 사상 최대의 매각대금을 주고 대우건설을 인수하기에는 덩치가 너무 작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회장은 두산과 한화 쟁쟁한 경쟁상대를 물리치고 대우건설을 인수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현재 임직원들은 대우건설에 이어 대한통운마저 거머쥐겠다는 의욕으로 똘똘 뭉쳐 있다.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이같이 말하고 있다.

올해 말이나 내년 초에 대한통운을 인수하고, 내년 하반기에 2 사옥에 입주할 때는 능히 재계 서열 1 그룹에 도전할 있다.”
재계에서 회장을 두고미다스의 으로 부르고 있다. 이는 부러움과 시샘이 뒤섞인 표현으로 있다. 외환위기 당시 앞을 내다볼 없을 정도로 궁지에 몰렸던 그룹으로서는 화려한 변신을 셈이다.
회장이 대우건설을 너끈히 인수한 비결은 투자 명목의 차입 방식인 소위재무적 투자자(FI)’ 통해 외부자금을 성공리에 끌어들인 있다. 당시 그가재무적 투자자에게 제시한 조건은 인수 3 내에 주가를 2600028000원에 유지해주겠다는 것이었다. 이런 약속은 최근 주가가 사상 초유의 호황을 구가하면서 사실로 증명되었다. 현재 대우건설 시가총액은 8 원대로 인수금액을 훨씬 웃돌고 있다. 회장이 지난 1년여 동안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재계의 스타로 부상한 것은 이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궁지에 몰렸던 그룹의 화려한 변신
금호아시아나그룹이 대우건설을 인수한 따른 가장 소득은 무엇보다기회의 으로 불리고 있는 베트남의 건설시장이 눈앞의 떡으로 다가온 있다. 김우중 회장과 대우가 갖고 있던 베트남에서의 영향력이 건재한 것도 커다란 부수입이 아닐 없다. 현재 국내 기업 베트남에 가장 활발한 투자활동을 추진하고 있는 기업을 들라하면 단연 금호아시아나를 있다. 그는 임직원에게 이같이 말하고 있다.
베트남에서 성공하고 싶다면, 베트남 사람처럼 생각하라.”
최근 그는 2 3 일정으로 방한한 마잉 베트남 공산당 서기장을 수행하면서 활발한 경제 외교 활동을 펼친 있다. 그는 마잉 서기장 앞에서 이같이 포부를 밝혔다.
베트남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는 물론 사회공헌 활동도 적극적으로 추진해 공동번영의 길로 나아갈 것이다.”
앞서 그는 경제포럼 참석차 베트남 하노이를 방문했다가 현지 일간지 티엔퐁과의 회견에서 향후 40 달러를 투자할 계획을 갖고 있다고 발표한 있다. 이는 오는 2010년에 대대적으로 펼쳐질 하노이 천도 1000주년을 겨냥한 것이었다. 그가 베트남의 젊은 인재들을 육성하기 위해 학사제도를 만들고 문화기금을 조성하겠다고 밝힌 것도 베트남을 글로벌 경영의 전진 기지로 삼겠다는 복안에서 나온 것이다.
현재 재계의 관심은 회장이 과연 시장에 매물로 나와 있는 대한통운마저 성공리에 인수할지 여부에 쏠려 있다. 대한통운의 인수가격은 대략 4 원을 웃돌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대한통운을 인수할 경우 명실상부한 물류체계를 모두 갖추게 된다.
당초 회장은 지난 1945년에 전남 광주에서 태어나 광주제일고와 연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1967 금호타이어에 입사하면서 경영수업을 시작했다. 이후 계열사를 두루 섭렵하면서 곳곳에서 경영능력을 발휘했다. 1991년부터는 아시아나항공의 대표를 맡아 10 만에 연매출 25000 규모의 항공사로 변모시키는 성공했다. 이는 세계 항공업계에서 매우 드문 일이다.

●“대우그룹이 외부자금을 끌어들여 급팽창하는 것을 달갑지 않게 여기면서도 유독 대우건설과 대우증권만은 높이 평가했다. 인재가 많다는 이유였다. 그는 대우건설을 인수하면서나는 대우건설 사람들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기업의 존재이유는 고용창출
그룹의 비약적인 성장은 기본적으로 그의 윤리경영 철학에서 나온 것이다. 그는 특이하게도 기업의 존재이유를 이윤추구가 아닌 고용창출에서 찾고 있다. 이는 투명하고 정직한 경영으로 최상의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국가에 공헌해야 한다는 그의 신념에서 나온 것이었다. 실제로 그는 선친이 창업 이래정도경영(正道經營)’ 최고의 가치로 삼아 국가경제에 이바지해 것을 가장 자랑으로 여기고 있다.
그의 윤리경영은 책임경영의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 대표적인 사례로 지난해 8월에 벌어진 조종사노조의 파업 당시의 일화를 있다. 당시 결항사태가 빚어지자 회사는 신문에 대국민 사과문을 게재하기로 했다. 그는 홍보실에서 작성한 문안을 보고 대뜸 호통을 쳤다.
아무 잘못도 없는 임직원의 이름으로 사과하는가. 경영 최종 책임자는 나다. 이름으로 사과문을 게재하라.”
이는 그룹의 총수가 모든 계열사의 최종적인 결정권을 행사하고 있는 만큼 경영상의 잘못에 대해서도 최종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는 신념에서 나온 것이다.
틀에서 글로벌기업으로 부상한 기업은 비록 민간기업의 간판을 달고는 있으나 사실 보이지 않는 국가기업의 성격을 띠고 있다. 실제로 수많은 직원이 기업에 의존해 삶을 영위할 뿐만 아니라 국가경제의 성패도 이들 기업의 성패에 크게 좌우될 수밖에 없다.
인재경영 원칙을 신봉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그는 지난 1997년의 외환위기 당시 인위적인 구조조정을 단행해야만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그가 고심 끝에 제시한 방안이 바로 안식휴직제였다. 그는 직원들에게 이같이 당부했다.
어느 누구도 떠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우리 모두 고통을 분담하자.”
기존 사원의 경우 , 당해 입사자는 1 동안 무급휴직을 떠났다. 외환위기의 돌풍이 지나간 1999 4월에 무급휴직 직원들의 복직 환영 자리가 마련되었다. 자리에 참석한 그는 한참 동안 고개를 숙인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가까스로 입을 열어 말은 한마디였다.
모든 탓이오.”
그는 2000년대에 들어와 강력한 구조조정을 단행할 때도 결코 직원의 손을 놓지 않았다. 이는 결국 그룹을 흑자로 전환시키는 원동력이 되었다. 그가 대우건설을 인수한 것도 따지고 보면 인재경영 원칙에서 나온 것으로 있다. 그는 평소 대우그룹이 외부자금을 끌어들여 급팽창하는 것을 달갑지 않게 여기면서도 유독 대우건설과 대우증권만은 높이 평가했다. 인재가 많다는 이유였다. 그는 대우건설을 인수하면서 이런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나는 대우건설의 사람들을 것이다.”
업의 성쇠도 사람에 달려 있는 만큼 사람이 최대 자산이라는 사실을 통찰한 명언이 아닐 없다. 그의 인재경영은 남녀 구분을 거부한다. 여직원들이 결혼해도 회사를 떠나지 않는 증거이다. 그가 여직원에게 특히 인기가 높은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국민소득 2만∼3 달러로 살려면 남자 혼자 벌어서는 불가능하다는 그의 확고한 생각이기도 하다.
그의 인재경영 원칙은 내실경영으로 구체화되고 있다. 내실경영 행보는 최근 임원과 부장급 간부들을 연수원에 소집해 회계 중심의 수치경영 비결을 전수한 데서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그는 자리에서 계열사 임원들에게 이같이 경고했다.

●“조종사 노조 파업으로 결항사태가 빚어지자 홍보실은 대국민 사과문을 작성했다. 작성한 문안을 회장은 대뜸 호통을 쳤다. “ 아무 잘못도 없는 임직원의 이름으로 사과하는가. 경영 최종 책임자는 나다. 이름으로 사과문을 게재하라.””

재무제표 모르면 임원될 자격 없어
재무제표를 모르면 임원될 자격이 없다.”
재무제표를 통해 매출과 경상수익 경영 전반을 꿰뚫어 있어야만 내실경영을 기할 있다는 취지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가 평소 합리경영을 강조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있다. 실제로 그는 보고를 받을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이 있으면 세세한 부분까지 따져 묻는 것으로 정평이 있다. 업무 외적으로는 한없이 자애롭지만 업무에 관한 철저하게 원칙과 합리를 최우선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그룹 내에서 온정주의와 적당주의가 발을 붙이지 못하는 것은 바로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결코 각박한 사람은 아니다. 이는 그의 소위 음악경영 행보를 보면 쉽게 있다. 그는 지난 2005 5월에 한국의 메디치로 불렸던 박성용 회장이 타계한 이후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 이사장직을 이어받았다. 음악 애호가로 알려진 그는 틈이 때마다 음악과 경영의 접목 가능성을 언급해 주변으로부터음악경영 전도사라는 애칭을 받고 있다. 그의 음악예찬론은 전래의예악(禮樂)정신 그대로 표현한 것이기도 하다.
음악의 기본철학은 질서와 자유에 있다. 기업의 조직문화 또한 질서가 잡힌 같으면서도 빛나는 파격과 도전하는 자유가 넘실대는 음악과 같아야 한다.”
예악정신 강인한 리더십을 상징하는 부드러운 리더십을 상징하는 절묘한 조화를 의미한다. ‘관맹호존(寬猛互存)’ 통치리더십을 변용한 21세기의 바람직한 CEO리더십이 아닐 없다.
틀에서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아시아나항공 출항으로 2 창업을 이룬 이어 회장의 대우건설 인수로 마침내 3 창업을 셈이다. 당초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창업주인 박인천 회장이 해방 직후 광주여객을 세운 데서 출발했다. 1984년에 부친의 타계로 사령탑을 맡은 장남 박성용 회장은 취임 즉시 상호를 ()금호로 바꾸면서 내실을 다진 본격적인 기업 확장에 나섰다. 이때 마침 정부가 늘어나는 항공수요와 항공 서비스의 국제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복수 민항체제를 추진하기 시작했다. 정부가 2민항 설립을 종용하자 이를 흔쾌히 받아들임으로써 아시아나항공은 대한항공에 이어 국내 번째의 민항업체가 되었다. 이는 금호아시아나그룹의 2 창업에 해당한다.
3 창업을 이룬 회장의 탁월한 리더십이 지속적으로 발휘되는 그룹의 전망은 매우 밝다. 그러나 온통 장밋 빛인 것만은 아니다. 최근에 불거진 대우건설의 매각을 둘러싼 안팎의 곱지 않은 시선이 실례이다.
그룹 측은 대우빌딩을 오는 2008년까지는 팔지 않겠다고 공언했다가 불과 이를 번복한 있다. 이는 단기 매각을 통해 대우건설 인수의 과실만을 따먹으려는 아닌가 하는 의심을 받을 만했다. 실제로 대우빌딩 매각 발표 주가가 곧바로 치솟았다. 대우건설 인수로 막대한 이익을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기업의 이미지에 적잖은 손상을 입은 셈이다.
최근 경쟁업체인 대한항공이 저가항공 진출을 본격 선언하고 나선 것도 적잖은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간 아시아나항공은 후발주자로서 미주와 유럽 등지의 장거리 노선보다 중국과 일본, 동남아 등지의 중단거리 노선에서 집중해 왔으나 대한항공이 저가항공에 본격적으로 뛰어들 경우 혈투를 벌일 수밖에 없다.

형제경영이냐 ‘3 경영이냐


경영권 승계 문제도 간단치 않다. 박성용 회장은 지난 1996 4월에 돌연 동생 박정구에게 회장직을 과감히 물려주고 경영일선에서 손을 있다. 당시 그의 나이는 65세였다. 3 회장이 차남 박정구 회장은 회장 취임 6 만인 지난 2002년에 지병인 폐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때 그의 나이 역시 공교롭게도 65세였다. 결과적으로 이들은 65 동생에게 회장직을 물려주는 전통을 만들어낸 셈이다. 여타 그룹이 대개 장자승계 원칙에 입각하고 있는 반해 유독 금호아시아나그룹만이 형제경영의 원칙을 고수하는 것은 바로 때문이다.